불편함은 전부 제거해야 할 버그일까
좋은 도구는 마찰을 줄인다. 그런데 모든 마찰을 없애고 나면,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배웠는지조차 모르게 될 수 있다.
불편함은 전부 제거해야 할 버그일까
나는 대체로 불편한 것을 싫어한다.
버튼을 두 번 눌러야 할 일을 한 번으로 줄이는 게 좋고, 반복되는 명령은 자동화하고 싶고, 한 번 입력한 정보는 다시 묻지 않았으면 한다. 컴퓨터가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선물 중 하나는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찰을 줄여왔다.
가입 단계를 줄이고, 로딩 시간을 줄이고, 클릭 수를 줄이고, 결제를 빠르게 만들고, 검색하지 않아도 추천해주고,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일까지 대신한다.
대부분은 좋은 변화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생각이 든다.
우리는 불편함을 너무 정확하게 버그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찰이 없는 것은 대체로 좋다
형편없는 비밀번호 규칙을 외울 필요가 없는 것은 좋다.
은행 업무를 보려고 번호표를 뽑고 한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컴파일이 빨라지고, 배포가 자동화되고, 길을 몰라도 지도가 안내해주는 것도 좋다.
이런 불편함에는 별다른 미덕이 없다.
사람은 고생해야 성장한다는 식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쓸데없는 고생은 그냥 쓸데없는 고생이다.
문제는 모든 마찰이 같은 종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어떤 마찰은 비용이지만, 어떤 마찰은 생각할 시간을 만든다.
한 번 더 누르는 버튼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사려고 할 때 결제 과정이 길면 짜증이 난다.
서비스를 만드는 쪽에서도 당연히 그 단계를 줄이고 싶어 한다. 결제 직전 사용자가 떠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그 귀찮은 한 단계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이 되기도 한다.
정말 필요한가.
가격은 괜찮은가.
내일도 사고 싶을까.
마찰을 없애는 사람에게 이 질문들은 장애물이다.
마찰을 겪는 사람에게는 판단의 순간일 수 있다.
둘 다 틀리지 않는다.
단지 같은 인터페이스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보고 있을 뿐이다.
선택을 대신해주는 편리함
추천 시스템은 선택의 비용을 줄여준다.
무엇을 볼지, 무엇을 들을지, 무엇을 살지 고민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답을 먼저 보여준다.
AI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무엇을 검색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긴 글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직접 골라내지 않아도 되고, 빈 문서 앞에서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지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편리함을 좋아한다.
동시에 조금 경계한다.
선택은 결과만 얻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후보를 보고 하나를 버리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실패한 검색어를 몇 번 입력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궁금했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도 한다. 엉망인 첫 문장을 쓰고 지우면서 처음 생각과 다른 결론에 도착하기도 한다.
결과만 보면 전부 낭비처럼 보인다.
하지만 생각은 이상하게도 그 낭비 속에서 자주 만들어진다.
효율은 목적이 아니다
효율이라는 단어는 반박하기 어렵다.
같은 일을 더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는 작은 함정이 있다.
무엇을 효율적으로 하는지는 말해주지만, 왜 그것을 하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때 효율은 강력하다.
문제는 인생의 꽤 많은 일이 목적지부터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어떤 생각을 믿고 싶은지는 처리량으로 최적화하기 어렵다.
오히려 너무 빨리 답을 얻으면 질문을 제대로 만들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나는 좋은 도구가 답을 늦게 줘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일부러 느린 앱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 제품은 철학적이기 전에 삭제된다.
다만 도구가 모든 판단을 대신하기 시작할수록, 사람에게 남겨야 할 마찰이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하면서 생기는 이상한 역설
개발자는 자동화를 좋아한다.
테스트를 자동화하고, 포맷을 자동화하고, 배포를 자동화하고, 반복되는 코드를 생성한다.
이건 거의 언제나 옳다.
하지만 자동화가 잘될수록 사람이 직접 만지는 부분은 줄어든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올라간다.
그리고 문제가 생긴 날, 그동안 제거했던 마찰이 사실은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직접 설정 파일을 만져본 사람과 버튼만 눌러본 사람의 차이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망가졌을 때 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손으로 해야 한다는 결론 역시 우스꽝스럽다.
자동차 구조를 완전히 이해해야 운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자동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몰라도 괜찮은지 아는 것에 가깝다.
불편함에는 두 종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불편함을 대충 두 종류로 나눠 생각한다.
하나는 사람의 시간을 빼앗기만 하는 불편함이다.
반복 입력, 의미 없는 대기, 불필요한 절차,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단순 작업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은 가능한 한 없애는 편이 낫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판단하도록 만드는 불편함이다.
멈추는 것, 비교하는 것, 직접 선택하는 것, 실패해보는 것, 이해하기 위해 조금 헤매는 것.
이것까지 전부 제거하면 삶은 편해질 수 있지만, 동시에 내가 무엇을 선택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둘 사이에 명확한 선은 없다.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절차가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한 확인 과정일 수 있다.
그래서 어려운 문제다.
완벽한 도구가 조금 무서운 이유
완벽한 도구를 상상해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알고, 가장 좋은 선택지를 골라주고, 실수를 막고, 귀찮은 과정은 전부 대신하고, 결과만 보여준다.
나는 아마 그 도구를 아주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오래 사용하면 점점 많은 것을 맡길 것이다.
그때 내가 얻는 것은 엄청난 편리함이다.
대신 잃을 수 있는 것은 사소하다.
조금 헤매는 시간.
잘못 골라보는 경험.
쓸데없는 것을 읽다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하는 순간.
직접 결정했다가 후회하는 일.
효율의 관점에서는 전부 제거 대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은 그런 것들을 모아서 취향이라고 부르고, 경험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자기 자신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모든 마찰이 사라진 미래가 반드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완벽하게 편리한 세상이 온다면 가끔은 일부러 불편한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목적지 없이 걷거나, 추천 목록을 끄거나, 답을 바로 찾지 않고 조금 생각하거나, 자동으로 만들어진 문장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써보는 식으로.
기계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해보기 위해서.
좋은 기술은 인간의 불필요한 고생을 줄여야 한다.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모든 불편함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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